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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업] ‘에너지 질서’가 국가 미래를 좌우한다

에너지를 설계하라 ① ‘에너지 질서’가 국가 미래를 좌우한다

참 오랫동안 기술을 갈고닦아왔다. 효율을 높이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며,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 길에서 한국은 빠른 학습 속도를 자랑했다. 선진기술을 추격하며 세계 시장을 누볐고 놀라운 성장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제 그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심해저에 흐르는 거대 해류가 바뀌듯이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기술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새 시대 경쟁의 본질은 ‘첨단기술’에서 ‘질서 설계 능력’으로 옮겨갔다. 특히 ‘에너지 흐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피 말리는 경쟁이 시작됐다. △탄소 규범 △공급망 규제 △기술 표준이 이 전쟁의 신무기로 등장하고 있다. 화석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고효율 이용 기술, 신재생에너지의 산업화를 모두 뛰어넘는 새로운 아젠다가 부상했다.

세계는 ‘규범 선점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중 세계는 에너지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 질서로 싸우는 시대에 들어섰다. 유럽은 탄소국경조정제(CBAM)를 앞세워 글로벌 무역 규칙을 다시 쓰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라는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들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 공급망을 무기화해 첨단산업을 움켜쥐고 있다.

기술이 아니라, 질서로 싸우는 시대다. 기준을 세운 자가 시장을 지배하고 규범을 설계한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국제정치의 본질은 질서를 설계하고 지키는 힘에 있다. 기술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오늘날 국가 간 경쟁은 ‘규범 선점권’을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기술만을 붙들고 있다. 남이 만든 규칙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수출을 늘리려는 전략에 완고하게 집착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는 기술 진보만으로는 시장을 주도할 수 없다. 기준을 만들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져도 우리는 늘 글로벌 게임판 위의 을(乙)일 수밖에 없다. 새 시대에 진정한 경쟁력은 기술과 기준, 규범을 동시에 장악할 때 비로소 완전하게 갖추게 된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언제까지 다른 이의 기준에 적응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추격자로 남을 것인가?”적응자는 영원히 추격자일 뿐이다.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나라만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개척자의 삶이 비록 피곤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추격자에서 설계자로 탈바꿈해야

그렇다면 우리가 설계자가 될 능력은 있을까?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과 제조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조선 △석유화학 △반도체 △이차전지 △전기차 △수소차 △모듈형 △소형원자로(SMR) 등 다수의 미래전략산업에서 놀라운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표준 분야에서도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등 국제무대의 주요 간사국으로 활약 중이다. 우리는 에너지전환 산업의 규칙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자산은 보유하고 있다.

질서를 만드는 국가가 되려면 기술 의지와 전략뿐 아니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인재와 체계가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우선 기술 외교 산업 표준 전략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 특히 미래 세대를 겨냥한 질서 설계 교육과 훈련 체계가 시급하다.

또한 그 인재들이 실제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과 구조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처럼 부처별로 흩어진 정책이나 단기 실적 중심의 접근으로는 새로운 질서를 설계할 수 없다. 국가가 미래 방향을 제시하면 학계와 연구기관이 전략과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은 비즈니스로 시장을 선도하는 사회적 연합이 필요하다.

미국은 정부와 기업이 합심하여 셰일가스 혁명으로 에너지 질서를 바꾸었고 에너지 가격을 재편하면서 세계 경제 중심축을 장악했다. 유럽은 탄소 기준을 만들어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규범 차원에서 끌어올렸다. 그들은 기술을 넘어 질서를 설계한 것이다. 기술은 모방되지만 질서는 구축되는 순간 수십 년 동안 세상을 움직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질서 설계 전략을 갖춰야 한다. 빠르게 달리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앞서갈 수 없다. 자기 주도로 판을 짜는 자만이 게임을 지배할 수 있다. 그 질서의 출발점은 ‘에너지 흐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추격자가 아니라,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