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전쟁으로 카호프카 댐 붕괴
납 등 독성물질 시한폭탄 터진 격
인류 생존을 위해 필수인 물을 잘못 활용하면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재확인됐다. 산업화된 지역에 있는 댐이 전쟁으로 파괴된 것은 독성물질의 시한폭탄이 터진 일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댐 파괴로 일어난 홍수로 경제적 사회적 피해가 일어난 건 물론 중장기적으로 광범위한 환경 피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전세계적으로 대형 저수지 시설(LRF) 5만개가 넘는다. 대형 저수지 시설은 댐 구조물 등을 포함한 물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전체 체계를 말한다.
24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의 논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카호프카 댐 파괴의 환경적 영향(Environmental effects of the Kakhovka Dam destruction by warfare in Ukraine)’에 따르면, 댐이 파괴되면서 새롭게 노출된 퇴적물 내의 독성 오염물질들이 장기적으로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23년 6월 6일 우크라이나의 카호프카 댐은 군사 공격으로 파괴됐다. 카호프카 대형 저수지 시설은 드니프로 강의 6개 저수지 중 가장 하류에 있으며 물 약 18㎦(표준 수영장(50m×25m×2m) 약 360만개를 채울 수 있는 양)를 저장했다. 군사 공격으로 인한 댐 파괴로 인해 물 약 16.4㎦가 2주간 방출돼 하류 지역에 심각한 홍수가 발생했다.
연구진은 현장 자료들과 원격 감지, 모델링 기법 등을 활용해 댐 파괴로 인한 시공간적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주민 11만명과 건물 6만개가 홍수 피해를 입었으며, 84명이 목숨을 잃었다. 카호프카 댐 파괴로 인한 인간에 대한 위험 분석에는 미국 서부 17개 주의 수자원 관리를 담당하는 미국 내무부 산하 개척국(U.S. Bureau of Reclamation)의 접근법이 사용됐다.
문제는 피해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형 저수지 바닥 1944㎢가 노출되면서 저수지 생물량(바이오매스)의 약 80%가 손실됐다.
홍수 첫 주에만 식물성 플랑크톤 방출량은 하루 9000~1만7000톤이나 됐다. 대형무척추동물 손실량도 약 1만톤으로 추산됐다. 홍수가 산란 직후에 발생했기 때문에 어린 물고기 전체가 손실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또한 퇴적물에 의해 범람원 초지가 매몰되면서 양서류 조류 포유류 서식지가 파괴됐다.
장기적인 환경 영향도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노출된 저수지 바닥 퇴적물에는 납 카드뮴 니켈 등 고독성 중금속 약 8만3300톤이 들어있다. 연구진은 이들 물질이 표면 유출과 계절적 홍수를 통해 강으로 유입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배수 중 방출된 양은 1% 미만으로 나머지는 표면 유출과 계절적 홍수를 통해 강으로 유입됐다. 실제로 2024년 봄 홍수로 이미 약 888.5㎢가 침수돼 오염물질 농도가 증가했다.
흑해 영향 또한 심각했다. 담수층이 염수 위에 10m 두께로 형성되었고, 오데사에서는 염도가 급격히 감소했다. 질소와 인 농도는 5~10배 증가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홍합 개체군이 최대 50%까지 감소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연의 회복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23년 8월 중순까지 새로운 범람원 면적의 18%에 초기 수변 식생이 정착했다.
연구진은 5년 내에 범람원 재식생화가 완료될 것으로 예측했다. 2024년 봄에는 포유류의 이주도 관찰됐다.
물론 이 연구는 전쟁으로 인해 현장 연구 등 자료 수집과 접근이 제한적이었고 초기 평가에 의존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군사적 충돌로 인한 댐 파괴가 생태계와 인간에게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보여주고 전세계적으로 노후화된 댐 관리의 문제를 보여준다.
카호프카 댐을 재건할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상반된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이다. 연구진은 15㎞ 길이 임시 장벽들을 건설해 주 수로를 두 개의 가장 큰 습지 지역과 분리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오염물질 방출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어떤 계획도 전쟁이 끝나야 가능하다”며 “군사적 충돌에서 물을 무기로 사용하는 일은 위험하며 수 세대에 걸친 환경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