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이 온실가스 저장과 흐름에도 영향 미쳐 … 생태계 보전과 탄소시장의 만남, 새로운 기후금융
트럼프 2.0 시대가 다가오면서 기후변화, 나아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떨어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큰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과거 우리가 기술발전 산업구조 전환 등에 뒤처지면서 국제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일을 또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 단기적이고 중장기적인 해법을 함께 살펴서 국익을 최대화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게다가 기후변화는 결국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문제와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학적 투자, 나아가 새로운 기후금융 흐름에도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다.
“탈플라스틱 문제를 얘기하며 거북이 많이 등장하는데, 거북은 한국에서 장수 복 등 좋은 일을 가져다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11월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유엔지속가능발전센터(UNOSD, 센터장 박천규) 등이 연 ‘격차 해소, 변화의 동력 - 국가 역량 강화, 증거 기반 정책과 재정을 통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이행’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청중들에게 웃음을 주며 행사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한 전문가가 한 말이지만 실제로 바다거북은 플라스틱 나아가 온실가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코에서 빨대가 나오는 바다거북’. 11월 25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유엔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는 몰라도 한번쯤 듣거나 봤을 내용이다. 그만큼 우리 뇌리에 강한 인식을 심어주며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석유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경우 온실가스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네덜란드 환경단체인 ‘플라스틱 수프 재단(Plastic Soup Foundation)’에 따르면, 1ℓ짜리 플라스틱병 하나를 생산하는데 화석연료 1/4ℓ가 소모된다. 또한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8~10%가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 쓰인다고 추정된다.
그런데 이 바다거북이 해양 생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며 이산화탄소 격리 역할을 하는 해초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해초 군락지를 발견하는 역할을 한다면 어떨까. 해초 군락지는 자연적인 탄소 흡수원으로 기후위기 완화와 적응을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해초 분포와 범위에 대한 정보가 의외로 많지 않은 상황이다.
◆녹색거북 따라 해초군락지 확인, 정확도 더 뛰어나 = 국제학술지 ‘영국 왕립학회 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실린 논문 ‘녹색거북을 따라 찾은 바다의 탄소 저장고’에 따르면, 녹색거북(Chelonia mydas)을 활용하면 위성 보다 더 정확하게 해초 군락지를 찾을 수 있었다. 연구진은 산란 중인 녹색거북 53마리를 추적해 특징적인 섭식 지역 38곳을 확인했다. 이들 섭식 지역에서 모두 해초 군락지가 확인(100%) 됐다. 이는 위성 이미지를 기반으로 추론하는 방식으로 확인할 때의 정확도 약 40%보다 훨씬 높은 정확도다.
게다가 녹색거북을 따라 발견한 해초 군락지들은 이전 연구들보다 더 다양한 수심에서 표본을 채취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를 통해 해초군락지 1㎡당 약 4.89kg(오차범위 ±0.83)의 유기탄소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해초군락지 범위와 관련 블루카본 추정치를 개선함으로써 자료가 부족한 지역에서 블루카본 자원의 보전을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탄소가 포함된 환경에 따라 블랙카본(black carbon) 그린카본(green carbon) 블루카본(blue carbon) 등으로 분류한다. 블루카본은 해안생태계와 해양생태계에 흡수되어 저장된 탄소다.
과학자들은 블루카본 분포를 이해하기 위해 위성이나 원격감지 등을 사용했지만 의외로 결과는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육지와 달리 수중 서식지의 경우 해수면 아래 침투하는 빛의 깊이가 생각만큼 깊지 않기 때문에 위성에서 해초 군락지를 확인하는 게 어려웠다.
또한 항공이미지는 조류와 같은 다른 녹색덩어리와 해초 군락지를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았다. 탄산염이 풍부한 열대 해역에 주로 서식하는 해초의 특성도 원격감지 등을 활용한 방식의 정확도를 떨어뜨리는 한 요인이다. 탄산염은 빛을 산란시키고 해초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
◆코끼리가 사는 숲이 온실가스 저장 능력 더 많아 = 생물을 통해 생태계를 이해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탄소순환을 이해하기 위해 야생동물을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제학술지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의 논문 ‘야생동물의 탄소 서비스 가치화로 보전 활동 재원 마련’에 따르면, 아프리카 중부와 서부에 사는 둥근귀코끼리(Loxodonta cyclotis)가 있는 숲은 없는 경우보다 3~15% 더 많은 탄소를 저장했다. 코끼리는 개체 밀도와 탄소 저장량 증가 사이의 상관관계가 확립된 몇 안 되는 종이다. 이는 인구 증가의 변화를 탄소 흐름과 연관시킬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코끼리는 우산종이기도 하다.
우산종은 생물 보전을 위해 선정된 종이다. 이 종이 보전되면 전체 군집 또는 생태계가 보전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개체 성장률을 반영한 3가지 보존 시나리오에 따라 아프리카 9개국 79개 열대 우림 보호 지역(PA)에서 코끼리의 탄소서비스를 평가했다. 탄소가격은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값을 기준으로 했다.
코끼리 등 야생동물은 해양이나 육상생태계에서 탄소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탄소 플럭스(단위 시간 동안 단위 면적으로 이동하는 양)에 영향을 주고 탄소 저장을 촉진한다. 영양그물을 통한 1차 소비자와의 직간접적인 상호 작용은 물론 영양분을 재분배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신체에 탄소를 저장하거나 죽은 뒤 장기적으로 탄소저장고 역할도 한다.
코끼리는 작은 나무들을 짓밟거나 큰 나무 씨앗을 분산시키는 등 열대우림 지상 탄소 증가에 기여한다. 나무 밀도가 낮으면 자원 경쟁이 줄어들고 나무가 더 크게 자랄 수 있다. 나아가 부피당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하는 나무들을 유지시킨다. 이 논문은 종전 탄소 시장 가격을 바탕으로 코끼리가 생산하는 탄소서비스 가치를 평가하고 야생동물의 탄소서비스가 투자자를 유치할 만큼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
◆경제적 성공 측정에 ‘자연자본’도 포함 움직임 =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생물다양성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금융시장 참여가 중요하다. 최근 영국과 프랑스 등을 필두로 자연자본 가치까지 포함한 금융시장 전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경제적 성공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자연자본을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세계적인 환경경제학 석학인 파르타 다스굽타(Partha Dasgupta)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는 보고서 ‘생물다양성의 경제학:다스굽타 리뷰’에서 자연을 경제활동의 자산으로 간주하고 경제적 성과를 따질 때 자연 훼손 정도를 반영하자고 주장했다. 또한 국내총생산(GDP)의 대안적 개념으로 포용적 부(Inclusive Wealth)를 제시했다.
2023년 영국과 프랑스는 생물다양성 크레디트 개발과 유통 활용 등을 위한 국제 생물다양성 크레디트 자문 패널을 공동으로 출범시킨 바 있다. 생물다양성 크레디트는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탄소배출 크레디트와 유사한 개념으로 기업이 생물다양성 손실 억제를 위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