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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손길 기다리는 ‘파키스탄의 난지도’

한국 손길 기다리는 ‘파키스탄의 난지도’

파키스탄 라호르시 쓰레기 매립지를 가다

» 파키스탄 라호르시의 쓰레기가 모이는 사기안 매립장에서 빈민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비닐, 종이 등을 줍고 있다.
침출수 방지도 복토도 없이 12년째 강변에 방치
물·전기 없는 천막촌 빈민 3천명 쓰레기로 생계
한국 전문가 파견 ‘공무원 교육’ 경험·기술 전수

매캐한 쓰레기 타는 냄새와 먹이를 찾아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백로 무리들이 쓰레기매립장에 들어섰음을 일깨워줬다. 지난달 17일 방문한 파키스탄 제 2의 도시 라호르 북서쪽에 위치한 사기안 매립지는 1970~80년대 서울 난지도 매립장을 떠올리게 했다. 인더스강 지류인 라비 강변에 자리잡은 약 20만㎡ 면적의 이 매립장에는 벌써 12년째 아무런 침출수 방지시설이나 복토작업 없이 쓰레기차들이 줄지어 생활폐기물을 퍼붇고 있었다.

비닐이 뒤엉긴 쓰레기 언덕을 지나 새 쓰레기를 부리는 강변에 다다르자, 채소찌꺼기를 찾아먹느라 바쁜 물소떼와 하늘을 맴도는 솔개떼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거기엔 사람들이 있었다.

»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어린이들이다.(위) 펀자브 주의 폐기물 처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 현지를 방문한 한국 연구진 가운데 김병태 대진대 교수팀이 가정쓰레기 내용물을 조사하고 있다.(아래)
칼리(40·여)는 갑자기 들이닥친 외국인과 시 공무원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봤다. 남편이 죽은 뒤 네 아이와 함께 5년째 쓰레기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는 그는 “어제 두 아들과 함께 종이, 플라스틱, 땔나무 등을 주워 120루피(약 2천원)를 벌었다”고 말했다.

호기심에 찬 아이들 30여명이 재활용품을 담을 자루를 메고 몰려들었다. 꾀죄죄한 옷차림과 맨발에 슬리퍼가 많았지만 표정은 천진난만하고 밝았다. 개중엔 서너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학교에 다니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서로 두리번거리다 “다니는 애들도 있다”고 대답했다. 시 공무원 아시프 나시르가 아이들을 일일이 불러 손바닥과 눈동자를 뒤집어 봤다. 다행히 별다른 상처나 황달끼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라호르시의 병원 40곳 중 36곳은 병원폐기물을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리고 있다. 이 매립장에서 재활용품을 줍는 150여명 가운데는 가임연령의 젊은 여성과 어린이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유해물질에 특히 취약하다.

하지만 쓰레기 빈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삶의 터전이 없어지는 것이다. 칼리는 매립장이 폐쇄되거나 기계화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도둑이 되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

모헨조다로와 함께 인더스강 문명의 중심도시였던 하라파를 잉태했던 라비강은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고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저습지나 공터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초 사기안 매립지의 땅 주인이 쓰레기 반입을 허락한 것도 강변을 돋워 땅값을 올리자는 속셈에서였다. 강변엔 쓰레기 비닐이 하얗게 덮혀있고 물고기가 살지 않는 강 바닥에선 메탄가스가 부글거렸다.

강변에서 1㎞쯤 떨어진 곳에는 난민촌 모습의 쓰레기 마을이 있었다. 쓰레기 재활용으로 먹고사는 도시빈민들의 무허가 거주지이다. 도시 외곽에 급증하고 있는 이런 ‘카치 아바디스’(무단점유자) 마을은 전체 도시인구의 25~30% 를 차지하면서 이 나라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만주르 파크란 이름의 이 마을에서 만난 아프간 난민인 아쉬리 구자르(46)는 “시내에서 비닐봉지 등을 주워 한 달에 4천~5천루피(6만7천원~8만3천원) 벌지만 전기도 물도 나오지 않아 살기가 아주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마을에만 2천~3천명이 산다고 말했다.

인구 8백만의 라호르시가 쓰레기 몸살을 앓고 있다. 해마다 6%의 경제성장을 하는데다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고 있지만 위생매립장을 비롯해 아무런 재활용 정책도 없다. 공식 쓰레기 수거율은 70%이지만 중상층 거주지에서만 제대로 수거될 뿐 무단투기가 만연해 있다. 나시르 자비드 펀자브주 도시정책 및 관리국장은 “청소인력과 장비가 부족한데다 무엇보다 쓰레기에 대한 대중의 의식수준과 참여가 낮은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전문가들이 파키스탄 도시의 쓰레기문제 해결사로 나섰다. 지난 15~18일 라호르시 공무원회관에서 열린 펀자브 주 9개 도시 40여명의 폐기물 행정 실무자들이 참여한 워크숍에서는, 한국의 폐기물 정책과 시민참여의 경험을 소개해 큰 관심을 모았다. 공동조사사업 한국쪽 책임자인 정회성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적개발원조가 이뤄지기 전에 해당국의 실무자들을 교육시켜 현장기술을 습득토록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대도시 주변엔 쓰레기 재활용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무허가 천막촌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퇴비 맛보고 쓰레기통 뒤지고…
발로 뛰는 현장조사 한국전문가들 화제

펀자브 주 청소담당자들 사이에선 요즘 한국 폐기물 처리 전문가들의 행태가 화제다. 폐기물 처리실태를 조사하던 수도권매립지 공사의 한 직원은 퇴비의 상태를 알기 위해 직접 ‘맛’을 보는 등 현장을 발로 뛰었다. 김병태 대진대 교수팀은 쓰레기 수거와 적환시스템을 둘러보면서 가정에서 내버린 쓰레기봉지들을 직접 헤쳐가며 성상조사를 해 안내하던 공무원들을 놀라게 했다. 쓰레기를 만지는 건 하층 빈민이나 하는 일로 이 나라에선 치부된다.

세계은행은 파키스탄 펀자브 주의 고형폐기물 처분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스위스와 한국에 의뢰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이 용역결과에 따라 파키스탄에 공적개발원조를 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개발원조의 용역은 선진국 컨설턴트들이 독차지해 와 한국이 참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한국이 연구용역에 참여하게 된 데 대해 나시르 자비드 펀자브 주 도시정책 및 관리국장은 “한국이 최근 성공적으로 폐기물 문제를 해결한 경험에 주목해 세계은행에 강력하게 요청했다”며 “한국 전문가 발표에서 우리와 비슷했던 난지도 사진을 보고 한국에서 배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환경정책평가연구원과 수도권매립지공사 주도로 시작한 이 연구용역은 원조를 받아 사업을 수행할 실무자들을 본격적으로 교육시킨다는 독특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국은 오는 3월에도 서울에서 30여명의 파키스탄 청소공무원을 초청해 두 번째 현장교육을 할 예정이다. 적절한 서울 회의 참가자를 고르기 위한 시험도 치렀다.

이번 사업을 맡고 있는 서재향 세계은행 수석 하부구조 전문가는 “파키스탄 공무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국제워크숍에 참가하는 걸 본 적이 없다”며 “한국의 환경개선 경험은 세계 개도국이 주목하는 값진 자산”이라고 말했다.


2007-02-0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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