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1단계 10만드럼 저장 사용후핵연료는 ‘산넘어 산’
경주 방폐장 운영 최종 승인
경북 경주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정부의 운영 허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가동 준비를 시작한다. 1985년 당시 과학기술처가 처분장 건립 계획을 처음 발표한 지 29년 만에 사업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1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경주 방폐장 운영 허가 승인안에 대해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 8명 중 5명이 찬성해 이 방안을 최종 의결했다고 밝혔다. 200L 드럼통 80만 개를 처분할 수 있는 전체 시설 중 1단계인 10만 드럼통 규모의 지하동굴 처분시설에 대해 운영 허가가 내려진 것이다. 방폐장 운영기관인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측은 “내년 1분기(1∼3월) 중 정식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주 방폐장은 원자력발전소, 병원 방사능시설 등에서 사용한 장갑이나 부품 등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분하는 시설이다. 이런 폐기물을 드럼통에 넣어 밀봉한 뒤 지하 80∼130m의 암반동굴 내 콘크리트 구조물(사일로)에 영구 저장한다. 사일로는 지름 25m, 높이 50m의 시설물로 1∼1.6m 두께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지진, 해일 등에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공단 측의 설명이다.
현재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경주 방폐장의 지상 저장창고와 각 원전의 임시 저장시설 등에 보관 중이다. 전남 영광군 한빛원전의 임시저장시설 포화율이 96%에 이르는 등 용량이 한계에 달해 방폐장 허가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이번 방폐장 운영 승인은 갈등으로 점철돼온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를 30년 가까이 걸려 처음으로 풀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1985년 계획 발표 후 지지부진했던 방폐장 건립은 1990년 ‘안면도 사태’를 기점으로 갈등의 수렁에 빠졌다. 과학연구단지를 조성하겠다며 정부가 비밀리에 건립을 추진했다가 주민들이 경찰서에 불을 지르고 군청 직원을 감금하는 소요 사태가 터지면서 전면 백지화됐다. 이후 인천 옹진군 굴업도, 전북 부안군 등지에 건립을 추진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일부 반대세력들은 방폐장 후보지로 거론되는 곳마다 나타나 시위를 주도하며 원전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2005년에 ‘처분장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처분장 지역에 대규모의 금전 지원을 약속한 뒤에야 문제가 해결됐다. 그해 주민투표를 거쳐 경주가 처분장 건립 지역으로 선정됐고, 정부는 경주에 특별지원금 3000억 원을 지원하고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의 경주 이전을 결정했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처리라는 더 큰 숙제는 여전히 남았다. 당초 정부는 올 연말까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제시하는 권고안을 토대로 내년 이후 처리 방식을 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론화위의 권고안 제출 시기가 내년 4월로 미뤄졌고 이후 일정도 줄줄이 연기됐다. 일각에서는 후보지역으로 선정될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현 정부가 임기 내에 이 문제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